세상은 늘 자신감을 내비치라고 가르친다. 요컨대, “심령이든 뭐든 부유하라! 쓰레기 더미 위가 아니라 세상의 꼭대기에
서라!”라고 말이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잔고가 0이 될 때 시작된다. 내놓을 거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을 때
비로소 전진하기 시작한다. 인생은 우리가 꽉 움켜쥔 것을 원치 않게 놓게 만든다. 삶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앗아간다. 집과 일자리도 거둬 간다. 피부
아래로 파고들어가 우리의 건강과 희망을 훔쳐가기도 한다. 살다 보면 손에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 같은
절망감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때 원치 않는 감정이 성난 파도처럼 밀려온다. 두려움과 외로움, 분노 같은 감정.
무엇보다 최악의 감정은 텅 빈 느낌 자체다. 인생이 끝난 것만 같은 이 기분을 절망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렇게 텅 빈 상태야말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상태라면? 나의 끝, 예수만 붙들게 하는 낮춤 나의 끝, 진짜 예수를 만나기 위한 벌거벗음 예수만 의지하라. 예수가 일하신다 브라이언은 18개월 된 아들이 몇 주 전에 세상을
떠났다. 조금 뒤 브라이언은 충격적인 사실을 전했다. “제가
후진하다가 쳤어요.” 브라이언은 아들이 집 밖에 나온 줄 몰랐다고 했다. 아들을 그렇게 떠나보낸 부모의 심정이 어떨지 상상이 가질 않았다. 몇
주가 지나서 브라이언은 예수님을 새롭게 발견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아주 가끔씩 의무감 때문에 교회에
얼굴을 비치던 그가 절실한 심정으로 하나님의 품으로 달려가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이게 이상한 일인가요?” 그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브라이언은 자신의 끝에서 예수님을
만났다. 이런 놀라운 아이러니를 경험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퍼뜩 페이스북에 들어가 다음 글을 올렸다. 아래 문장을 완성해 보세요: ______때 예수님의 실제를 만났다. 몇 시간 만에 수백 개의
답글이 올라왔다. 개중에는 전반적인 상황을 이야기한 글이 더러 있었다.
• 더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을 때. • 내
힘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을 때. • 아무
데도 기댈 곳이 없었을 때. 그러나 대부분의 대답은 이처럼 구체적이었다. • 말기
암으로 몇 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받았을 때. • 우울증이
참기 힘들 만큼 깊어졌을 때. • 30년
동안 청춘 바쳐 일했던 직장에서 아무 대책도 없이 쫓겨났을 때. • 남편이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 • 초음파
검사로 태아의 심장박동이 멈춘 것을 확인했을 때.
답글을 쭉 읽어 내려가다가 이 모든 대답을 하나로 집약시킨 듯 한 글을 발견했다. 브라이언과 내 페이스북 친구들의 말은 이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다. 나의
끝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예수가 나에게 실재가 되었다. 살다 보면 위와 같은 고통스러운 상황을 만나지만 ‘나의
끝’에 이르는 건 한 차례의 사건으로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나의
끝으로 가는 길은 실은 매일같이 걸어야 하는 길이다. 왜냐하면 나의 끝이야말로 예수님이 나타나시고 그분
안에서 진정한 삶이 시작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이 길은 결코 쉽지 않다. 내가 그곳에 이르기를 원하지 않아서다. 난 어려움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건 어디까지나 내 발전과 성공이다. 나를 높이는 법을
알려 주는 책이라면 몰라도 나를 끝내는 법을 읽고 싶은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예수님은
목숨을 부지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지만 생명을 잃는 자는 찾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